Jmdie 2010. 12. 20. 23:56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에 위치한 용주사

 

 

 

 

 

용주사 홍살문

용주사에는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없는 홍살문이 있는데 이것은 용주사가 정조대왕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절이기도 하면서 융건릉을 수호 관리하기 위한 원찰이기 때문이다.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용주사 사천왕상

 

 

 

 

불 음 각

천보루 왼쪽 앞에 자리한 불음각(佛音閣)에는 커다란 범종 하나가 걸려있는데 네면에 당좌와 비천을 서로 마주보도록 쌍으로 조식하여 넣었습니다.

이 범종은 1985년에 조성 되었는데 그 소리가 영롱하여 국보 제120호인 범종과 비교해 볼 때 그 영험함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예불 때마다 울리는 긴 종소리의 여운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중생의 귓가를 씻어내고 부처님의 미소 띤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고귀한 말씀이 되어 혼탁한 하늘을 밝게 울려주고 있습니다.

 

 

 

삼 문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이라 부르며 정면 도리 위에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죽농(竹濃) 안순환(安淳煥)의 글씨로

 '龍珠寺'라는 현판이 자리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글씨가 인상적이며 오른쪽 옆문에는 '中央禪院'의 현판이 세로로 걸려있습니다.

삼문의 네 기둥은 상단부는 목재이고 하단부는 석재의 초석인데 유난히 높고 큰 편입니다.

네 기둥에는 '龍珠寺佛'의 네 자를 각각 첫 글자로 한 시구가 주련으로 걸려있는데 역시 안순환의 글씨입니다.

 

 

천 보 루

 

 삼문을 지나 절 경내에 들어서면 한 눈에 대규모의 누각이 정면에 나타납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인 천보루. 1790년 절의 창간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누각인데 도편수는 경상도 영천 은해사(銀海寺) 쾌성(快性)스님이 맡았고,

강원도 삼척영은사(靈隱寺)의 팔정(八定)스님이 단청을 하였습니다

 

 

천 불 전

현재 천불전 자리는 과거에 노전(爐殿), 또는 향로전(香爐殿)이라고 불리던 건물이 있던 곳입니다.

이 자리에 최근 3년동안 법당불사를 하여 93년 3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천불전(千佛殿)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천개의 작은 불상을 봉안하였고 이 천불은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한 것으로 주로 현재의 현겁천불을 이룹니다.

 

 

 

법 고 각 

 

대웅보전 왼쪽에 위치하는 단칸 3평의 아담한 건물로 내부에 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법고는 홍고(弘鼓)라고도 하며 보통 북이라고 합니다.

북은 예불과 의식에 쓰이는 사물(四物)의 하나로서 짐승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소리를 냅니다.

또한 북소리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모든 이에게 참다운 이치를 전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부모은중경탑

 

 

 

지 장 전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사찰의 건물을 명부전이라 합니다.

그 내부에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서 시왕전이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다고 해서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범 종 각

범종은 사원건물에서 쓰는 종을 가리킵니다.

절에서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모든 이에게 때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가 그 소리가 신묘하여

예불의식 등에 쓰이게 되었는데 범종의 소리는 중생의 마음속을 깊이 울려 어리석은 몸과 마음을 자비로운 부처님의 품으로 이끌게 합니다.

이처럼 종소리만 들어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자라난다고 하여 종소리 자체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대웅보전

용주사의 가람구조에서 가장 중심되는 곳. 흔히 사찰내에서 중심되는 부처님을 모신 건물을 대웅전이라 부르는데 정확한 의미에서 보면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곳을 가리킵니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부를 때 '대영웅 석가모니'라하고 줄여서 '대웅'이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이 계신 곳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용주사는 '대영웅 석가모니불을 모신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에서 대웅보전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대웅보전은 1790년 용주사의 창건과 함께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인데, 보경당(寶鏡堂) 사일(獅馹)스님이 팔도도화주(八道都化主)를 맡아 대웅보전을 비롯한 145칸의 전각을 함께 지었습니다